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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
문종의 네째 아들로서, 11 세 때 출가하여 화엄종의
승려가 되었다. 나중에는
화엄종뿐만
아니라 여러 종파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였으며,
그러다가 천태종에
큰
관심을 갖게 되고, 마침내 송으로 건너가
천태종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였다. 송
에서
귀국한 그는 화엄종을 크게 일으키고 속장경을
간행하는 한편, 새로운 종파
인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천태종>
여초 광종 때 승려 의통(義通)과 제관(諦觀)이
남중국의 오월(吳越)에 건너
가
중국의 천태종을 부활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고려에서는 종파로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숙종 2년(1097)에 해동 천태종
이
창설되었다.
의천은
천태종을 일으키기에 앞서, 이미 교·선의
대립을 극복하고, 종교계의 통
일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화엄종의 입장에서
각 종파들을 융합시키려고
하였고,
이와 같은 통일 운동을 펴 나가는 데 있어, 원효의
화쟁 사상을 모범으로
하였다.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 각 종파의 사상을 종합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의천은,
교종과 선종을 융합시키는 큰 과제를 천태종에서
찾으려 하였다. 즉, 천태
종의
교관 겸수(敎觀兼修)를 내세워 선종을 포섭하려
하였다. "교"란 불교의 교리
체계이며,
"관"이란 실천 수행법인 지관(止觀,
결국 참선)인데, 이 양자 즉, 교종과
선종의 수행 방법을 함께 닦아야(겸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천에
의한 천태종의 성립은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종파가
개창되었다는 의미
뿐
아니라, 당시 고려 불교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과
항께 원효 이래의 해동 불교의
전통에
대한 재인식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한편, 천태종은
의천의 사후 침체하
였고,
교·선의 대립 양상이 다시 나타났다가
나중 지눌의 조계종에 의하여 교종과
선종은
교리상의 통합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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