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과서 국사 사전-

 (上)권  제Ⅳ단원   중세 사회의 발전

58.의천, 천태종
(義天, 天台宗) 

  

  <의천> 문종의 네째 아들로서, 11 세 때 출가하여 화엄종의 승려가 되었다. 나중에는

       화엄종뿐만 아니라 여러 종파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였으며, 그러다가 천태종

       큰 관심을 갖게 되고, 마침내 으로 건너가 천태종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였다. 송

       에서 귀국한 그는 화엄종을 크게 일으키고 속장경을 간행하는 한편, 새로운 종파

       인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천태종> 여초 광종 때 승려 의통(義通)과 제관(諦觀)이 남중국의 오월(吳越)에 건너

       가 중국의 천태종을 부활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고려에서는 종파로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숙종 2년(1097)에 해동 천태종

       이 창설되었다.

          의천은 천태종을 일으키기에 앞서, 이미 교·선의 대립을 극복하고, 종교계의 통

       일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화엄종의 입장에서 각 종파들을 융합시키려고

       하였고, 이와 같은 통일 운동을 펴 나가는 데 있어, 원효화쟁 사상을 모범으로

       하였다.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 각 종파의 사상을 종합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의천은, 교종과 선종을 융합시키는 큰 과제를 천태종에서 찾으려 하였다. 즉, 천태

       종의 교관 겸수(敎觀兼修)를 내세워 선종을 포섭하려 하였다. ""란 불교의 교리

       체계이며, ""이란 실천 수행법인 지관(止觀, 결국 참선)인데, 이 양자 즉, 교종과

       선종의 수행 방법을 함께 닦아야(겸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천에 의한 천태종의 성립은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종파가 개창되었다는 의미

       뿐 아니라, 당시 고려 불교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과 항께 원효 이래의 해동 불교의

       전통에 대한 재인식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한편, 천태종은 의천의 사후 침체하

       였고, 교·선의 대립 양상이 다시 나타났다가 나중 지눌조계종에 의하여 교종과

       선종은 교리상의 통합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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