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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철
작성일 2016-01-15 (금)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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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를 날조한 기록상의 첫 인물


한漢나라 무제(武帝, BC156년~ BC87년)의 사관史官 사마천이 조작한 기자조선(箕子朝鮮)

한중 고대사를 날조한 기록상의 첫 인물은 2,100년 전 한나라 때의 사관史官인 사마천이다. 사마천은 한무제가 전쟁에 참패하고 돌아온 시기에, <사기史記>를 저술하였다. 사마천은 [사기]<본기本紀>에서 조선이라는 호칭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런데 제후국의 역사를 다룬 <세가世家>에서 ‘봉기자어조선(封箕子於朝鮮)’ 이라 하여 갑자기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썼다.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중국 사가들은 조선 역사가 약 3,100년 전 중국의 제후국이었던 기자조선에서 시작된 것으로 정의한다.


《상서대전(尙書大典)》과 <사기史記> 등에서 전하는 기자조선의 내력은 이러하다. 주나라의 건국자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감옥에 감금되어 있던 기자箕子를 풀어 주었다. 이때 기자는 주나라에 의해 풀려난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 조선으로 떠나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무왕이 그를 조선 왕으로 봉하였다. 그런데 제후로 봉해진 이후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다. <상서대전>은 기자箕子가 책봉을 받은 후 신하의 예를 행하기 위해 주나라를 찾아가 무왕에게 홍범구주에 대해 설명하였다고 한다.



반면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기자箕子가 책봉을 받았지만 ‘주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았다(而不臣也)’라고 기록하였다. ‘기자를 제후로 임명했다’는 말 바로 다음에 ‘신하로 삼지는 못했다’는 모순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후가 되면 당연히 신하가 되는 것인데도 그와 상반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결론적으로 기자箕子라는 인물이 조선 왕으로 봉해진 역사적 사실은 전혀 없었다.


중국 산동성 조현에서 서남쪽으로 약 15Km 정도 가면 왕성두촌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 들판 한가운데에 작고 초라한 모습의 기자箕子의 묘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떠나버렸다(走之朝鮮)’는 구절이다. 이것은 동방 땅에 그전부터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천명하는 내용이다. 기자가 망해 버린 고국을 떠나 이웃나라 조선으로 망명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이 기자조선을 내세워 단군조선을 숨기려 하였으나, 오히려 더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기자조선은 한민족사를 그 출발부터 중국사에 예속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이 날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자箕子는 비간比干, 미자微子와 더불어 당시 상나라의 삼현三賢이었다. 비간은 상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에게 정치를 간하다가 사형되었고, 미자는 비간의 죽음을 보고 멀리 도망쳤다. 기자箕子는 거짓으로 미친 척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 감금되었다. 기자箕子는 고조선 서쪽 변두리를 맴돌았을 뿐 한반도 지역으로 넘어 온 적이 없건만, 고려 때 송나라 사신이 “그대 나라에 기자箕子의 묘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 후 고려 숙종 7년(1102) 예부상서 정문(鄭文)이 무주고총(無主古塚)을 하나 찾아 임금께 청하여 서경(평양)에 가짜 기자묘(箕子墓)와 기자 사당을 만들었다.


또한 서경의 반듯한 도로 흔적들을 기자(箕子)가 만들었다는 정전제(井田制)의 증거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1960년대 기자 정전터와 평양 을밀대 북쪽에 있던 기자묘를 조사하면서 그 허구가 밝혀졌다. 기자 정전터는 고구려시대 도시 구획 흔적이었고, 기자묘에서는 사기 파편과 벽돌조각만 나왔다. 기자箕子에 대한 진실은 그는 무왕에 의해 풀려난 후 상나라 유민을 이끌고 당시 단군조선(번조선)의 국경지역인 산서성 太原으로 이주하였다. 망명지 단군조선 땅에서 6년 정도 살다가가 고향 서화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였다.




중국인들의 역사 기록법
공자가 노나라 242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하여 <춘추春秋>로 이름 지었는데, 이 책은 주나라 왕실을 종주로 삼는 대일통大一統 사상과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정신을 표방하고 있다. 그 후 중국 사서들은 이 <춘추>를 역사 서술의 표준으로 삼게 되었는데, 중국 사서의 편찬 원칙은 다음 세 가지의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요약된다.

첫째, 중국에 영광스런 일은 한껏 부풀려 쓰면서 수치스런 일은 감추고(爲國諱恥)
둘째, 중국은 높이면서 주변 나라는 깎아내리고(尊華攘夷)
셋째, 중국사는 상세히 쓰면서 이민족 역사는 간략하게 적는다(祥內略外)

춘추필법은 표면적으로는 대의명분을 밝혀 세우는 역사 서술법이지만, 사실은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에 충실한 필법이다. 사마천 이하 역대 중국의 사가들의 잘못된 춘추필법을 지적한 것은 단재 신채호선생이다. 그는 [조선사연구초]<전후삼한고前後三韓考>에서 중국 역사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사마천을 “공자 춘추의 존화양이, 상내약외, 위국휘치 등의 주의를 굳게 지키던 완유頑儒”라고 혹평하였다.




중국 역사학자들의 잘못된 시각을 지적한 중국 초대총리 주은래
1963년 6월28일 주은래周恩來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국과 조선,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 될 때까지 3, 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항상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모욕하면서…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위에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 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분들 과학원 분들이 중국'조선관계사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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