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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조선신문
작성일 2011-06-11 (토)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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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전신망 장악 위해 왕비를 쳐라"

"재일교포 2세인 나는 자라면서 일본식 이름을 강요받는 굴욕의 생활사를 겪었다. 아픔을 갖고 역사를 읽으며 분노를 갖고 역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자의 말 치고는 뜻밖이었다. '명성황후 시해와 일본인'의 저자( 김문자)가 출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메일로 되물었다.

―역사에 감정이 담기면 객관성이 흐려지지 않나?

"한국인이 한국 근대사를 아무 감정도 없이 읽거나 쓴다는 것이 오히려 불가사의하다. 나는 일본 사료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도록 분노를 느낀다.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그 사료의 의미조차 모르는 게 틀림없다. 역사 연구의 객관성? 차원이 다른 문제다. 객관성이란 엄밀한 자료 비판, 논증의 합리성으로 뒷받침되는 검증 과정의 문제다. 사료를 근거로 하는 역사 연구에서 객관성은 기본 아닌가."

책은 저자 말대로 '아픔과 분노'를 머금었으되 시종 '엄밀한 자료와 논증'으로 무장돼 있다. 무엇이 그를 아프고 분노하게 했나. 116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이른바 '조선 국모 시해' 사건이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도를 찬 무리가 경복궁으로 난입했다. 고종은 정원 쪽 응접실로 나와 앞을 막아 섰다. 침입자들은 왕을 밀치고 곧장 나아갔다. 왕비가 숨어있던 장안당 쪽이었다. 일본인 사관(士官)은 막아 서는 궁내대신 이경직을 향해 권총을 쐈다. 이경직은 안간힘으로 왕비 곁으로 가려다 칼까지 맞고 나가떨어졌다. 왕비는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궁녀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궁녀 세 명이 정원으로 끌려나와 칼에 베었다. 그중에 왕비도 있었다. 위를 향한 채 쓰러진 왕비는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쉬었다. 자객들은 들고 있던 사진을 맞춰봤다. 왕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중에 시신은 불태워지기까지 했다. 나이 45세였다.

당시 일본인 영사조차 '고금을 통틀어 전례 없는 흉악'이라 부른 이 폭거는 날이 밝으면서 윤곽이 드러났다. 일본전권공사인 미우라 고로의 지시에 의한 일본인 무리의 범행이었다고, 외국 주재원들은 수군댔다. 관련자들은 일본으로 소환됐다. 하지만 종국엔 다 풀려났다. 사건은 적어도 형사 법정에 관한 한 그걸로 종결이었다.

저자가 '재수사'에 나선 것은 이 지점부터다. '미우라 공사 주도의 왕비 시해' 그게 전부일까. 관련인들을 다시 역사의 법정으로 불러낸다. 단서는 미우라의 사건 전후 행적. 당시 조선 공사와 도쿄 외무성, 군 수뇌부인 대본영(大本營) 간에 오간 통신 기록과 기밀 문서 등이 증거로 제출된다.

드러나는 '실체'는 알려진 것 이상이다. 미우라는 주범이 아니라 종범(從犯)이었다. 배후는 일왕 직속 군 최고통수기관인 대본영, 그 정점에 육군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 대장 등이 있었다. 이들이 육군 중장 출신 미우라를 조선공사에 앉혔고, 그의 지휘하에 일본 장교 8명이 극우 당원들과 함께 쿠데타를 위장한 만행을 저질렀다. 저자의 결론이다.

범행 동기까지 밝혀낸다. 바로 대륙 침략을 위한 전신망(電信網) 확보였다. 당시 한반도에는 의주~부산 종단 전신이 깔려 있었다. 일본군으로서는 바다 건너 대군을 파견하고 지휘하기 위해서는 통신축이 필수였다. 청일전쟁에 낙승한 것도 개전 이틀 전 경복궁 침입 사건을 통해 궁 앞 조선정보총국을 장악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3국(러시아·프랑스·독일) 간섭으로 기득권이 위협받자 친러파인 왕비 제거에 나섰다. '전신선 조선 반환'을 주장한 전임 공사가 경질되고 미우라가 부임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할 때 해야 한다." 시해 사건을 보고받은 일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명성황후보다 정확히 100년 뒤 오사카에서 나고 자랐다. 나라여자대학에서 동양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땄다. 후기에서 '7년간이나 사학과 조수직으로 일하면서 하나의 당당한 연구자가 되지 못한 채 퇴직한 낙제생 연구자'라고 자신을 낮췄다. 하지만 추천사는 그의 성과를 이렇게 평했다. "근대 한일관계사의 틀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다. 반가움을 넘어 전율을 느낀다." 국내 대표적인 명성황후 연구자인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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